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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이용설명서

광장시장으로 떠나는 가을맞이 소풍 2014.11.27

광장시장으로 떠나는 가을맞이 소풍

[광장시장이용설명서] #7. 제철을 즐기는 방법

허은 _ 자유기고가

푸른 하늘, 반짝이는 햇살, 그냥 어디라도 소풍 나가고 싶은 계절, 가을이다.
서울 시내 어디든, 인터넷 어디든 물건 살 곳이 차고 넘치는 요즘이지만, 어슬렁거리며 놀러 가자하면, 시장이 제격이다. 그래서 광장시장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여차하면 생선이라도 사서 저녁 반찬 하면 되지, 뭐. 으레 시장은 찬거리나 사러 가는 곳이라는 업신여김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던가. 온갖 세간 마련하는 종합 쇼핑공간으로 대형 할인점에 익숙해지기 전에 시장이 먼저 그런 살림 장만의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몇몇 지방 소도시에서 열리는 오일장도 파는 물건의 구색이 얼추 비슷해지고, 그 동네 특산물도 다 비슷한 느낌이고 해서 장터 구경의 재미가 나날이 사그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계절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없고, 하우스 농사로 제철이 언제인지 다 잊어버린 우리에게 ‘지금 시장에 있는 과일이 바로 제철식품이에요’ 하고 알려주는 듯 진열된 전통시장은 여전히 흥미진진한 곳이다.

광장시장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이 그냥 무턱대고 찾았기 때문에, 시장 입구에서는 ‘뭐~ 시장 다 비슷비슷하구나’하고 기대감을 슬며시 내려놓았지만, 실은 ‘계절 바뀐 기념으로 집안 분위기를 바꿔 보는 것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평일 낮인데도 사람은 많았고, 특히 직물과 한복, 의류점이 많은 광장시장의 특성 때문인지 가을 분위기 내 볼 아이템들이 득시글했다. 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지갑을 꺼낼까 말까 내내 망설여야 했다. 게다가 가을…. 전어, 게, 새우 등 해산물도 넘친다. 여름에는 먹기 꺼려지던 대하며 꽃게는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여름에 가득 채운 양분으로 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특히 가을 음식의 대명사 전어는 추석을 전후하여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가 기름이 올라 가장 맛있는 때라고 한다. 짧은 제철이 지나면 잔가시가 억세져 먹기도 좀 그렇고, 10월부터는 큰 바다로 이동하기 때문에 잡기도 힘들다고 하니, 제철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오죽 맛있으면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지 않던가.

사과, 밤, 대추, 배, 석류 등 과일도 넘치는 수확의 계절이며 찬바람 불 날씨를 막아줄 옷과 신발이 즐비한 광장시장 나들이는 군침 넘치고 눈도 호강하는 행복한 나들이였던 셈이다. 요즘은 계절과 관계없이 언제든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제철 음식을 챙겨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제철 음식은 그 시기에 적절한 햇빛, 바람과 물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영양가는 높고 맛도 좋으며 가격도 적절하다고 한다.

종로5가 8번 출구로 나서니 오른쪽에는 공사 가림막이 설치된 건물이 보인다. 시장 입구를 찾아 좀 걷다 보니 북 2문 입구에 작은 좌판이 여럿 깔렸다. 가을 제철 과일인 무화과도 수북하고 생전 처음 보았던 으름이라는 열매도 보았다. 으름은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야생 과일이라는데, 가을 산의 바나나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속이 하얗다. 맛은 머루나 다래랑 비슷하다는데, 요즘 과일로 치면 키위와 비슷하다고 한다. 무화과도 가을이 제철인데 잼을 만들면 향긋한 맛을 좀 더 오래 즐길 수 있다. 과일 파는 할머니가 무뚝뚝하긴 한데 그렇다고 불평을 하기엔 카리스마 넘치신다. 이런 게 시장의 맛이지 하며 언뜻 웃고 시장 안으로 들어선다. 광장시장 명물이라는 ‘마약 김밥’을 비롯해 온갖 음식을 파는 골목이 가득, 그 옆에는 다양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전통시장은 눈요기하기에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제부터 우리는 물건을 사고팔면서 서비스도 잘 받아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물건을 사지도 않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자리를 떠나 버리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해야 한다는 흔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참에 충동구매로 눈썹달 모양 베개를 사고 보니 그제야 주인 양반에게 하나라도 물어볼 자신감이 생긴다. 뭐니 뭐니 해도 시장에서는 작은 것 하나라도 집어 들고 흥정하고 볼 일이다. 아침나절 시장 나들이의 작은 예절은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거침없이 개시해 드리는 일이 아닐까?

광장시장은 의류, 침구, 직물, 한복을 파는 가게들이 참 많다. 광장시장에서만 보았던 직물 거리의 풍경 중 재미있던 것은 자투리 천 가게들의 존재였다. 화려하고 깔끔한 천도 참 많은데, 작은 소품들 만들 수 있는 자투리 천을 파는 가게들이라니 얼마나 알뜰한가. 자투리 천으로 식탁보며 방석, 쿠션을 만든다는 주인장 손글씨가 더없이 정겹다. 이렇게 감탄하며 직물 가게 길을 걷는데, 어린애 팔뚝만 한 덩어리로 묶인 직물들이 보였다. 궁금해 물으니 와이셔츠나 남방 하나 만들 만큼의 분량으로 포장해 둔 것이란다. 재봉틀을 다루는 재주만 있었어도 이 천들을 하나씩은 다 구경하고 골랐을 거다.

걷다가 인형에게 입히면 좋을 법한 미니 한복을 만든 솜씨에 감탄하고 구경하고 있자니 젊은 사장님이 나온다. ‘구경하느라고요~’ 했더니 ‘사셔도 됩니다.’ 했던 사장님의 재치있는 말 속에는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구경만 하고 가게 되어 미안했던 구경꾼이었지만, 그저 유쾌한 놀이처럼 웃을 수 있으니 좋았다.

장 구경하며 가장 내 취향에 맞아 눈이 즐거웠던 것은 곳곳에 있는 천연염색 의류들이었다. 천연염료로 물들인 천으로 지은 옷이며 모자나 가방 등 소품들도 더없이 멋스러웠다. 색감은 물론이거니와 옷의 디자인도 좋았다. 여름에는 인견, 봄이나 가을, 겨울에는 면과 비단에 염색을 한다는데 가격이 좀 비싸 보였지만, 아마 빠르게 대량으로 만드는 공정을 거치는 옷들의 싼 가격에 너무 길든 탓이겠지. 천의 질감이나 고풍스러운 색, 독특한 디자인을 생각하면 당연히 치를 만한 값이라고 생각한다.

광장시장에서 가을 이불 한 채 마련해 보는 건 어떨까? 가게마다 옷을 만들고 이불을 만드는 색감도 다르니 자신의 기호와 딱 맞는 물건을 찾아다니는 일도 재미있을 것이다. 가을용 이불과 요 세트를 5~6만 원으로 마련할 수도 있다니, 인터넷으로 숱하게 클릭질을 해서 이 시장 물건만 한 걸 사려고 해도 더 비싼 값에 샀던 것도 같다. 소풍 나온 듯이 집을 나서서 약간의 발품을 팔면 괜찮은 가격과 품질을 갖춘 물건을 직접 골라 살 수 있다는 게 전통시장이 갖는 매력이자 강점이다.

오랜만에 우뭇가사리, 마약 김밥으로 간단한 점심을 해결할까 하고 좀 더 둘러보다 동문 쪽으로 나오는 참에 2,500원짜리 생맥주를 파는 집을 발견했다. 주인장은 서울 시내에서 제일 싼 500cc 생맥주일 거라고 자랑이다. 길 가다 누가 물으면 맥주 아니고 음료수라고 하라며 농담도 하신다. 그래서 베게 하나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음료수처럼 보이는 맥주를 빨대로 빨아 먹으며 광장시장을 벗어났다.

한낮에는 햇살이 강해 여전히 덥지만, 아침저녁 공기는 나날이 쌀쌀해지는 날씨 탓에 기분도 어깨도 움츠러드는 요즘, 새로운 계절을 상큼하게 맞이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산 베개처럼 분위기를 바꾸는 소품이나 영양 만점인 가을 제철음식을 즐기며 다가오는 계절을 그저 느끼면 될 일이다. 집 안 청소 한판 하고 나서는 다시 한 번 시장에 나와 봐야겠다. 커튼도 바꾸고 소파에 천도 산뜻하게 씌워 볼까 싶다. 괜히 혼자 들뜬 마음에 콧소리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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